갑옷을 벗고 걷는 제주 해안도로
15년 차 대기업 중간관리자, ‘대체 가능한 나’를 넘어 ‘진짜 나’를 마주하기까지
돌이켜보면 지난 15년은 거대한 성채를 쌓아 올리는 시간이었다. 대기업이라는 견고한 조직, 중간관리자라는 이름의 직함, 그리고 든든한 가장이라는 역할까지.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이 모든 것을 ‘갑옷’처럼 겹겹이 챙겨 입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가두는 틀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갑옷이 너무 무거워 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변곡점은 거창한 사건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끼던 후배가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박수를 치며 돌아온 저녁, 나는 말없이 맥주 한 캔을 땄다. 텅 빈 거실에서 캔을 따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때 문득 서늘한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회사라는 간판을 떼고 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은 실존적이었다. 15년 동안 회사가 곧 나였고, 나의 성취는 곧 조직의 성과였다. 그 보호막이 걷힌 후의 ‘나’를 상상하려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주말마다 떠나는 등산조차 팀원들과 함께였으니, 회사 밖의 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조차 이런 나약함을 들킬 수 없었다. ‘아빠는 든든해야 한다’는 금기가 나를 더욱 단단한 갑옷 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 제주 출장길에서 우연히 해안도로를 혼자 걷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에서, 비로소 나는 ‘팀장 **’가 아닌 그저 ‘걷는 사람 **’가 되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기묘한 해방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물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월요일 아침 회의 자료를 준비하며, 다시 갑옷의 단추를 여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어깨를 짓누르는 그 갑옷이 보호구가 아니라 짐이라는 것을. 최근 팀원들 앞에서 “나도 사실 이 업무의 이유를 잘 모르겠다, 같이 찾아보자”라고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뜻밖에 팀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완벽한 팀장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졌을 때, 오히려 진짜 ‘동료’가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출근길에 갑옷을 입는다. 이것은 어쩌면 지독한 습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안다.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그 막막함이, 사실은 진짜 내 삶을 살고 싶다는 내면의 신호였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조금 덜 조여진 단추를 하나쯤 둔 채로 출근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조금씩,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를 덜어내는 연습을 시작할 뿐이다.
그 언젠가 제주 해안도로에서 느꼈던 그 바람처럼, 나의 진짜 삶도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