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장 **, 새벽 3시 캔버스 위에 빛을 채우다
냉장고에 붙은 투박한 가로등 그림 한 점, 그곳에서 시작된 어느 화가의 이중생활
“처음 스케치북을 펼쳤을 때요? 솔직히 되게 죄책감 들었어요. 근무 중인데 뭐 하는 건가 싶어서요.”
새벽 3시의 편의점,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고요한 시간. ** 씨는 카운터 뒤에 앉아 창밖을 응시한다.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과 편의점 간판의 차가운 하얀 빛이 뒤섞여 묘한 색감을 빚어내는 그 순간, 그녀는 붓 대신 연필을 든다. 미대 졸업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어느덧 4년 차, 이제는 어엿한 점장이 되었지만, 그녀의 진짜 정체성은 낮의 점장이 아닌 ‘새벽의 화가’에 머물러 있다.
그녀가 처음 그림을 그렸던 날을 회상하며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쉰다. “CCTV에 걸리면 어쩌겠어,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편의점 앞 가로등을 그렸는데, 지금 봐도 그림이 참 어설퍼요. 그런데 그 그림을 아직도 못 버리고 냉장고에 붙여뒀어요.” 그 투박한 종이 조각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라, ‘나 이러다 여기서 끝나는 건가’ 싶은 불안 속에서도 화가라는 꿈을 놓지 않겠다는 처절하고도 다정한 다짐이었다.
** 씨의 일상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낮에는 원룸 한구석 이젤 앞에 서서 밤에 목격한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고, 밤에는 차가운 편의점 조명 아래서 다시 세상의 소음을 지운다. 그녀의 예술은 거창한 추상이나 화려한 풍경이 아니다. 취객이 흘리고 간 소지품, 새벽을 견디는 사람들의 뒷모습,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은퇴한 미술 선생님과의 짧은 대화가 그녀의 캔버스를 채운다.
“새벽 3시마다 오시던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우유 하나를 사 가시던 분인데, 어느 날 제 그림을 보더니 ‘야, 그거 잘 그리네’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전직 미술 선생님이셨어요. 그 뒤로 제 그림을 봐주시곤 했는데, 그 시간이 제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개인 과외였죠.”
할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이 닿았던 그 그림 속에서, 할아버지는 우유 한 팩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씨는 그 웃음을 통해 편의점이라는 차가운 공간을 가장 다정한 안식처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짓누른다. “체력이 정말 문제예요. 밤새 서서 일하고 낮에 그림 그리니 수면 시간이 평균 4시간 남짓인데, 이제 몸이 비명을 질러요. 편의점을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고, 그림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하고. 이러다 쓰러지든지, 뭔가 터지든지 하겠죠.”
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녀는 SNS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그림을 보고 마음이 편해진다’는 댓글은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기대가 그림의 순수함을 해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뒷모습 시리즈’에 집중한다. 얼굴을 가린 뒷모습이나 툭 튀어나온 손끝에 담긴 피로와 설렘, 그 평범한 사람들의 온기가 주는 이야기에 더 진솔한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씨의 작업은 단순히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다. 편의점 점장이라는 이름표와 화가라는 본질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매일 아침 길어 올리는 고귀한 의식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두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에디터의 말에, 그녀는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그 낡은 가로등 그림은 오늘도 새벽이 지나 낮이 오는 경계선에서, ** 씨가 여전히 화가로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편의점의 불빛은 오늘도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불빛 아래에서 ** 씨는 오늘도 붓을 든다. 쓰러지거나, 혹은 무언가 터지거나. 그 아슬아슬한 희망이 그녀의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