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바람으로, 무지개 빛으로 존재하기
단어라는 틀을 넘어, 나라는 우주를 유영하는 법에 대하여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나를 설명할 ‘한 단어’를 찾아 헤매던 사람이었다. 세상은 쉼 없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그래서 너는 무엇이냐고. 그 질문은 마치 세상이 나를 안전한 칸에 넣어두고 안도하려는 거대한 분류 작업처럼 느껴졌다. 논바이너리라는 정체성을 마주하고 나서도, 나는 그 단어조차 나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주 길을 잃었다. 마치 규격에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추는 기분.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지우는 법을 택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닿으면 투명해져 바람처럼 스며들고,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지에 내 이름을 적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도망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아주 정교하고도 서글픈 생존 전략이었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간은 내게 일종의 해방구였다. 매일 같은 음료를 고집하는 사람, 매번 다른 취향을 탐험하는 사람. 그들의 다채로운 선택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모두 다른 색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왜 나만 유독 하나의 색으로 박제되어야 한다고 겁을 먹었을까. 혼자 밤 산책을 나설 때면, 검은색과 파란색이 교차하는 새벽녘의 ** 아래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다.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곁에 있는 바람, 그것이 내가 느끼는 나의 질감이었다.
어쩌면 나는 무지개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무심코 건넨 그 한마디가 왜 그리도 울컥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하나의 색깔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빛이 겹쳐져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 그러나 세상은 무지개를 보면서도 굳이 그 안에 숨겨진 프리즘의 복잡함은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가끔 외로웠고, 또 가끔은 죄책감을 느꼈다.
집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에서 ‘나’를 연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그랬다. 부모님이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닌, 그들이 상상한 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짓물러갔다. 나를 아끼는 마음을 알기에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침묵이, 역설적으로 나를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악순환 속에서 나는 나를 배신하고 있다는 기분을 견뎌야 했다. 그 죄책감은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만이 짊어질 수 있는 무거운 짐이었다.
휴학이라는 선택은 그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세상이 강요한 이름표들을 하나둘씩 떼어내는 과정이었다. 거울 앞에서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속여야 할까’ 고민하던 아침 대신, 카페에서 타인의 색깔을 관찰하며 나만의 색을 긍정하는 법을 배웠다. 글을 쓰며 발견한 문장들, “나는 이름 없는 바람이고 싶다”는 그 서툰 고백 속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보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를 먼저 이해하기 시작했다.
완전한 자유를 꿈꾸면서도, 누군가에게 따스한 온기나 시원한 바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 이 모순된 두 갈래가 바로 나의 실체였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이자, 동시에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다정한 여행자다. 이제는 안다. 나를 설명하는 단어는 밖에서 가져오는 명찰이 아니라, 누군가와 이름을 부르며 쌓아가는 다정한 거리감이라는 것을.
앞으로 복학이라는 다시 시작될 일상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학교라는 공간 또한 내가 만들고 싶은 ‘**의 공간’을 위한 거대한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는 가식적인 벽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관찰하고 나라는 프리즘을 더 선명하게 깎아내는 여정이 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바람이고, 그래서 어디든 머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 대화는 내 감정의 지도에 남은 첫 번째 이정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규정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유, 그리고 그럼에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봐주기를 바라는 연결의 갈망. 이 무지개 빛 조각들을 품고 나는 다시 내일로 걸어간다. 굳이 하나의 단어로 박제되지 않아도, 나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으니까. 흐르는 바람처럼, 다시금 찬란한 새벽의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