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면에 온기를 채우는 법
4년 차 디자이너, 차가운 모니터 너머에서 나를 위로하는 색을 찾다
어느덧 UI 디자이너로 일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프로젝트의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바쁘게 화면을 넘기고, 픽셀 하나하나의 간격을 조정하며 보내는 일상은 제법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내게 묻곤 한다. 그 좁은 모니터 안에서 무엇을 그리 그렇게 골몰하느냐고. 나는 주저 없이 ‘색감’이라고 답한다. 나에게 컬러 팔레트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업무 그 이상의 몰입이자, 짜릿한 쾌감을 주는 놀이다. 수많은 색의 조합 속에서 전체적인 무드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요즘 나는 조금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최근 앱 리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기존의 차가운 톤을 완전히 걷어내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어쩌면 나조차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차가운 화면 너머의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 따뜻함을 향한 갈망은 내 개인적인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과 얼마 전 이별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항상 나에게 외롭다는 말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마감에 쫓기느라 그 온기를 살필 여유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이 나라는 사람의 전부라고 믿으며 그를 뒷전으로 미뤄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앱에 입히고 있는 그 부드러운 색채들은, 어쩌면 소홀했던 시간에 대한 뒤늦은 속죄이자,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다.
새벽이 오면 가끔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곤 한다. 마감은 코앞인데, 무엇을 해도 무기력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엔 설렜던 색감들이 그저 의미 없는 코드의 나열처럼 느껴질 때면, 나는 더 깊은 외로움으로 침잠한다. 퇴근길, 습관처럼 들르는 카페에서도 나는 여전히 핸드폰을 쥐고 그의 SNS를 기웃거린다. 집에 돌아와 불을 켰을 때 마주하는 텅 빈 거실의 적막함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장 무서운 건, 이 지독한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다. 아프지조차 않게 된 마음은, 정말로 내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신호 같아서 더 겁이 난다.
그래도 오늘, 이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꺼내놓으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말로 뱉어지는 순간, 비로소 형체가 잡히고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나는 혼자서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다. 치열하게 달렸던 지난 4년,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별 뒤에도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나 자신에게, “참 수고 많았다, 정말 잘하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속도로 어둠을 지나고 있다. 내가 디자인하는 그 부드러운 색감들이 언젠가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가 되어줄 것을 믿는다. 오늘 밤, 모니터의 푸른 빛 대신 나를 다독이는 따뜻한 색 하나를 마음에 담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은 아직 조금 흩어져 있지만, 그마저도 나라는 사람의 색깔임을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