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이라는 이름의 조각들
질서 정연한 삶에 찾아든 낯선 온기에 관하여
밤이 깊었다.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시간이다. 방 안의 물건들은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흐트러짐 없는 책상,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내가 좋아하는 결의 책들. 이 완벽한 효율과 질서 속에 앉아 있으면 비로소 숨이 트인다. 나는 늘 이렇게, 혼자일 때 가장 단단하고 명료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사랑’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어 나를 흔들어놓는 걸까. 사랑이라니. 참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주제다.
나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누군가 내 일상을 툭 건드릴 때, 그건 설렘이라기보다는 기분 좋은 불편함에 가깝다. 나는 혼자만의 계획이 확실한 사람이다. 나의 리듬, 나의 시간, 나의 생각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안으로 들어오려 할 때마다 그 계획은 무너진다. 애초에 없던 약속을 잡고,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기꺼이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거부감이 드느냐고? 당연히 들었다. 귀찮았고, 왜 굳이 이런 짓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허락했다.
그 '무언가'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고요함. 굳이 말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조용함 말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고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걸까. 쓸데없는 대화는 피로할 뿐이다. 같이 있어도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 나의 일상적인 리듬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책을 읽거나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어도 괜찮은 그런 관계. 그것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영역의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그건 상대가 판단할 일이지, 내가 정의하고 포장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
결국 사랑이란 비효율의 결정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혼자 있는 삶이 훨씬 효율적이고 정교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비효율을 선택한다. 왜일까. 그 선택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하겠다. 비록 끝나고 나면 ‘왜 그랬을까’ 싶어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지만, 적어도 그 시간들 덕분에 나는 평소라면 절대 가보지 않았을 풍경을 보았고, 겪어보지 않았을 낯선 경험을 했다. 그건 나의 세계가 아주 조금, 아주 느리게 넓어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시간들은 다 지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억을 아예 없애버리거나, 마음의 짐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 요즘도 가끔 해외 직구 사이트를 보다가 그 사람이 좋아하던 브랜드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스크롤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주 짧은 멈춤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사람의 취향이 나의 일상 곳곳에 작은 흔적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흔적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지도, 그렇다고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아주 정갈하게 접어둔다.
사랑은 그런 것 아닐까. 억지로 규정하지 않아도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굳이 꺼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소중한 조각들. 누군가 곁에 있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유연하게, 혹은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이제 혼자서도 그 비효율을 그리워할 만큼은 되었다는 점이다.
질서 정연한 내 방의 공기 사이로 낯선 온기가 스쳐 지나간다. 다시 혼자인 밤, 나는 내일의 계획을 정리하며 펜을 든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이상의 감정 낭비도, 불필요한 정의도 필요 없다. 그저 이 고요한 밤이 주는 평온함을 안고, 내일의 효율적인 하루를 준비하면 그만이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