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에 대하여
10년 차 노무사 **가 마주한 정의, 고통,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법
어느 직업이나 타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게 마련이지만, 누군가의 고통과 부당함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증명해야 하는 이들의 삶은 유독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억울함을 대변하며 스스로를 소모해온 공인노무사 **. 그녀의 방 한구석에는 여전히 대학 시절 보았던 노동 다큐멘터리의 뜨거운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법정은 스크린 속의 정의보다 훨씬 더 차갑고 딱딱한 벽을 마주하게 한다. 오늘 우리는 사건 기록과 전화기 너머의 불안을 잠시 내려두고, 한 사람으로서의 **가 품어온 고민과 그간 스스로에게 건네지 못했던 위로를 나누어 보았다.
**Q: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을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초입부터 마음이 복잡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최근 가장 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사실 일 자체가 주는 보람은 커요.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준다는 건 대단한 가치니까요. 그런데 의뢰인들의 아픔이 너무 깊게 전염되는 게 문제예요. 특히 최근에 20대 초반의 한 의뢰인을 만났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해고까지 당해 눈이 충혈된 채 제 사무실에 앉아 계셨어요. 그 눈을 보는데 단순히 법률적인 사안을 넘어, 한 인간이 겪어야 했던 부당한 폭력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제가 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매번 같이 고통받다 보니, 정작 제 마음을 돌볼 틈이 없는 것 같아요.
**Q: 타인의 고통을 직업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그 화와 불안은 결국 **님이 그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런 감정들이 일상을 잠식할 때, 님은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A: 잘 다독이지 못해요. 그래서 필라테스를 시작했습니다. 몸을 움직여야만 비로소 머릿속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의뢰인의 급한 전화 한 통이면 그 평온은 곧바로 깨져버립니다. 그분들이 불안해하면 저도 같이 불안해지거든요.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에 서류를 밤새 검토하고, 내가 놓친 부분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이 어긋날까 봐 스스로를 혹사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너무 예민하다고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앞에서 어떻게 적당히 할 수 있겠어요.
**Q: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라는 그 문장 안에 **님이 이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가 묻어납니다. 그 책임감이 때로는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 될 때도 있지만, 결국 님을 지금까지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할 텐데요. 그 초심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A: 대학교 때 본 노동 다큐멘터리가 시작이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저들의 편에 서야겠다'고 다짐했죠. 사실 지금도 가끔 그 다큐를 다시 봐요. 현실의 벽 앞에 무력해질 때, 법정에서 사측의 증거 조작을 증명하지 못해 의뢰인이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볼 때, 그 뜨거웠던 초심을 떠올리며 다시 분노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일터에서 겪으셨을 부당함을 대신 풀어드리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갈망 같은 게 있나 봅니다.
**Q: 아버지는 그런 님의 속 깊은 뜻을 '쉬엄쉬엄 하라'는 말로 대신하고 계시군요. 본인은 정작 그 정의를 찾기 위해 자신을 태우고 있는데, 이제는 자신을 좀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A: 네, 오늘 대화를 통해 많이 깨달았어요. 제가 그동안 왜 이렇게 지쳐 있었는지, 의뢰인의 아픔을 제 아픔으로 착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거든요. 이제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주말에는 업무 전화를 멀리하고, 필라테스 시간을 늘려 제 몸과 마음이 쉴 자리를 만들어줄 거예요. 타인에게 용기를 준 것처럼, 저 자신에게도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의 얼굴에는 아주 짧지만 평온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타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방패를 기꺼이 내려놓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두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노무사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차가운 법전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발견하려 애쓰는 그녀 같은 이들이 있기에, 세상의 부당함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가 자신을 향해 내미는 그 다정한 손길이, 앞으로 그녀가 걸어갈 더 단단하고 지치지 않는 길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본인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타인을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그녀도 머지않아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노무사님.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평온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