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매듭 너머, 마침내 스스로에게 건넨 안부
2년의 미련을 뒤로하고,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한 남자의 기록
어떤 마음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2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 그 긴 시간 동안 ** 씨의 마음 한구석에는 낡은 매듭 하나가 묶여 있었다. 혹시나 다시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연락이 닿는다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끈이다. 그 끈은 때로 그를 지탱하게 했지만, 때로는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했다. 지난밤, 그는 2년 만에 용기를 내어 그 낡은 끈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 끝에서 돌아온 것은 재회라는 희망이 아니라, 관계라는 이름의 단단한 마침표였다.
연락의 시작은 사소하지만 묵직한 걱정이었다. 뉴스에서 접한 사고 소식, 그리고 그 소식 속에서 겹쳐 보인 옛 연인의 모습. 걱정은 때로 사랑의 잔해처럼 남는다. 논리적인 이성보다 앞서가는 불안함이 그를 다시금 과거의 문 앞까지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문을 연 상대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거절이 아니었다. 대신 ‘이미 끝난 것을 확정 짓고 싶어 하는’ 덤덤하고 건조한 말투가 있었다. ** 씨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의 미움이 아니라, 차라리 그보다 견디기 힘든 ‘완벽한 타인으로의 복귀’였다.
"많은 생각이 들었어. 아쉬움도 있었어. 친구라도 유지하며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것조차 안 된다는 걸 깨닫고서 약간은 좌절도 느꼈어. 하지만 뭐 그래도 2년 동안 나도 내려놓으려고 했던 거기 때문에 받아들일 순 있었어. 나도 뭐 마음 한편에 있던 미련을 내려놨다고 봐야지."
그는 좌절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라도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은, 연인으로서의 끝보다 더 명확한 상실을 그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의 안에는 기묘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괴롭히던 ‘혹시나’라는 가정법이 비로소 ‘아니었다’는 사실로 치환된 것이다. 확인받지 못한 기대는 미련이 되지만, 확인받은 절망은 정리가 된다. 그는 비로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준비를 마쳤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상실을 대하는 한 어른의 방식이었다. 허탈함과 아쉬움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억지로 붙잡을 수 없는 상대의 몫임을 인정하는 것. 그는 상대방이 짓고자 했던 그 단단한 매듭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랑을 포기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타인의 존재를 완전히 분리해내는 고통스러운 자립의 과정이었다.
많은 이들이 미련이라는 감정을 ‘사랑의 깊이’라며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 씨는 그 미련이 실은 자신의 마음을 가두는 투명한 감옥이었음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그 감옥의 문을 직접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당분간 일에 몰두할 것이라 말했다. 감정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대신, 현실의 과업으로 자신의 시간을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은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진실한 처방이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더 이상의 추억이나 프로젝트의 서사를 들려주는 것을 멈추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다독였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로 현재의 자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다. 인터뷰를 끝내자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는 의식처럼 들렸다.
이제 그의 마음 한편에는 비워진 자리가 생겼다. 2년 동안 미련이 차지하고 있던 그 텅 빈 공간은, 당분간은 고독으로, 그다음에는 새로운 일상으로 채워질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밤을 견디게 할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더 이상 과거의 문을 두드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문밖에서 서성이는 대신,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이라는 방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당신은 어떤 매듭을 묶거나 혹은 풀고 계신가요. 2년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은 그의 밤처럼, 우리의 사랑도 때로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정돈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침내 미련을 내려놓은 그에게, 이제는 어떤 계절이 찾아올까요. 그저 그가 오늘 밤만큼은 아무런 미련 없이, 평온한 잠을 청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