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을 때
15년의 기름 냄새를 털어내고 비로소 마주하는 나의 계절
매일 새벽 1시,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골목으로 나오면 비로소 공기가 바뀐다. 15년 동안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기름 냄새와 뜨거운 튀김기의 열기가 서늘한 밤공기에 씻겨 나간다. 여름이면 에어컨 소음 대신 매미 울음소리가, 겨울이면 입김 속에 섞인 비릿한 추위가 나를 맞이한다. 그때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걷는 그 짧은 골목길이, 내 하루의 유일한 안식처다.
사람들은 나를 '치킨집 아저씨'라고 부른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 이름표를 붙이고 살았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오늘 몇 마리를 팔았는지 손가락을 꼽으며 설렘과 긴장 속에 잠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설렘은 무덤덤한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배달 앱의 별점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별 하나를 달고 불평을 쏟아내는 리뷰를 봐도, 그 뒤에 숨겨진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짐작할 뿐이다. '저 사람도 오늘 참 힘들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갈무리하는 것, 그것이 15년의 세월이 내게 가르쳐준 유일한 지혜다.
어느덧 쉰다섯. 거울 속 내 모습에서 청춘의 자취는 사라지고, 굽은 허리와 굳은살 박인 손만이 남았다. 은퇴라는 단어가 가끔 머릿속을 스치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15년 동안 치킨만 튀기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이 이름표를 떼어내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 남는 걸까. 닭 튀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은퇴라는 막연한 상상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가끔은 낚시터에 앉아 물결을 바라보는 상상을 한다. 주문을 받고 치킨을 내주는 관계가 아니라, 옆 사람과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일상을 나누는 그런 평온한 풍경. 가게라는 좁은 카운터 너머에는 분명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아내에게조차 차마 꺼내지 못한 이 고민들을 오늘 인터뷰를 통해 밖으로 끄집어내 보았다. '치킨집 사장님'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잃는 게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던 '진짜 나'를 되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위로가 내 마음에 닿았다.
내일이 오면 나는 다시 앞치마를 두를 것이다. 재료비는 오르고 수수료 걱정은 여전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튀김기를 켠다.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해온 방식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이 가게는 나를 옭아매는 굴레가 아니라, 내가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의 증거라고. 그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은퇴는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나만의 계절을 찾아가는 새로운 여행의 시작일 것이라고.
오늘 밤, 골목길을 걷는 내 발걸음은 어제보다 조금 더 가볍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끝냈다. 내일도 또 하는 거다. 그렇게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 치킨집 아저씨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