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뒤편의 새벽
타인의 진실을 쫓아 15년을 흐른 뒤, 비로소 마주한 나의 적막
나는 왜 카메라를 들었을까. 왜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타인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가장 솔직한 표정을 기록하는 일에 매달려 왔을까.
처음 뷰파인더에 눈을 맞췄을 때가 기억난다. 사실 그건 어떤 장면이라기보다, 지독하게 강렬한 감각이었다. 눈앞의 세상이 직사각형 프레임 안에 갇히는 순간, 이상하게도 내가 사라지는 기분. 세상으로부터 도려내져서 오직 그 프레임만이 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느낌. 그때 알았다. 아, 내가 있을 자리는 여기구나.
누군가 묻더라. 그 강렬했던 처음이 아직도 유효하냐고. 지금도 나는 카메라를 들면 여전히 똑같은 ‘자리’를 찾은 안도감을 느끼느냐고. 글쎄, 편안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건 날 선 긴장에 가깝다. 피사체가 렌즈의 존재를 망각하고, 자기 안의 가장 ‘진짜’인 부분을 드러내는 그 찰나를 기다리는 일. 그 희열을 위해 나는 15년 동안 묵묵히 통로를 지키며 견뎌왔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껍데기를 다 벗겨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타인의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렌즈 너머에서 고군분투하는 동안, 정작 나의 진실은 어디쯤 머물고 있었을까.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의 편집실. 새벽의 적막이 비로소 밀려오면 나는 비로소 숨을 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어두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때. 그때야말로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다. 화려한 연출도, 피사체의 긴장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는 시간. 세상의 속도와는 완전히 분리되어 오롯이 나라는 인간의 농도를 확인하는 시간 말이다.
오늘처럼 누군가 내 렌즈의 방향을 나에게 돌릴 때면, 나는 늘 어색함을 느낀다. 늘 관찰하는 입장에만 서 있다가, 렌즈 앞에 서니 기분이 참 묘하다. 하지만 덕분에 알았다. 내가 그토록 타인의 ‘진짜’를 찾으려 애썼던 이유는, 사실 그 새벽의 정직한 적막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결국 내 안의 고요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새벽의 커피를 마시러 간다. 그곳에는 아무도 듣지 않는, 하지만 가장 솔직한 나의 언어들이 쌓여 있다. 오늘 밤도, 그렇게 조금 더 나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