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28살의 용기와 회피 사이에서 찾은 나만의 속도
나는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인터뷰어가 28살에 이탈리아로 간 이유를 계속 물어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모카 이야기를 하고, ISTP 성격 이야기를 하고, 레스토랑 운영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은 내가 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가 절망적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 일상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가 올라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모님은 미쳤다고 했지만, 정작 미친 건 그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거였다. 이탈리아 시장에서 토마토 냄새를 맡으며 '아 이게 살아있는 거구나' 느꼈을 때, 그제야 내가 얼마나 죽어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외로움을 마주했다. 모카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진짜 편안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웠거든요"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모카가 오고 나서 아침에 눈 뜨는 이유가 생겼다는 것도. 퇴근하면 꼬리 흔들며 달려오는 그 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는 것도. 이상하게 반려견 이야기는 숨기고 싶지 않았다. 아마 거기엔 부끄러움이 없어서일까.
뿌듯함도 있었다. 손님이 "이거 진짜 맛있어요"라고 할 때 느끼는 그 감정을 설명할 때. 단골손님이 기념일마다 찾아올 때 울컥하는 순간들을. 내 음식이 누군가의 추억이 된다는 생각. 매출 걱정, 재료비, 직원 관리로 힘들어도 그 한마디면 다 잊어버리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들. 이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마지막엔 안도감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잃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 이게 내 진심이었다. ISTP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모카가 그걸 적당히 알아서 배려해주고, 레스토랑에서 사람들 상대하고 돌아와서 조용히 산책하는 게 리셋 버튼 같다고 했을 때. 이제는 조금 속도를 줄이고 싶다고 했을 때.
인터뷰어는 내가 깊은 얘기를 피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나다운 거라고 했다. 맞다. 나는 내 속도로 살고 있다. 28살에 용기를 냈던 것도, 지금 모카와 함께 조용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도, 손님들의 추억을 만드는 요리를 하는 것도. 모두 나만의 속도다.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건,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때로는 도망치는 것도 용기의 한 형태일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는 피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