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고요가 건네는 위로, 혹은 멈춰있는 시간의 의미
낮의 긴장과 밤의 사색 사이, 스물한 살의 **가 기록하는 군 생활의 일기
입대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처음 며칠은 시계 바늘이 멈춘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그 느린 흐름 속에 제법 익숙하게 몸을 뉘고 있다. 부대 안의 시간은 밖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낮의 시간은 철저히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점철된다. 빡빡한 선임의 눈치를 살피고,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제 몫의 일을 해내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겠지만, 내게는 매 순간 자신을 지우고 규격화된 부속품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밖에서 친구들이 보내오는 소식들이 나를 무너뜨린다. 인스타그램 속의 그들은 맛있는 것을 먹고, 연애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각자의 속도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화면 너머의 그 활기찬 세계와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적막을 비교할 때면, 나만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덜컥 겁이 난다. 전역하고 돌아갔을 때, 내가 알던 풍경들이 모두 낯설게 변해 있으면 어쩌지. 나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지워지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은 낮의 뜨거운 햇살보다 더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찌른다.
하지만 밤이 오면 공기는 달라진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나만의 고요가 찾아오는 그 시간. 나는 이어폰을 꽂고 성시경의 노래를 찾는다. 힙합이나 EDM을 즐겨 듣던 스물한 살의 내가, 왜 이곳에서는 그토록 발라드에 매달리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선율은 밖의 공기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의 비명이자, 유일한 안식처라는 것을. 초소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아,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서글픈 깨달음이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낮에는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도망치듯 입대를 선택했었다.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경영학 전공, 나를 옥죄던 미래에 대한 막막함. 그 막막함이 두려워 군대라는 확실한 ‘쉼표’ 속으로 몸을 던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멈춰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처음으로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남들보다 뒤처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만의 속도를 찾기 위해 잠시 궤도를 수정 중인 것인지도 모른다. 낮의 긴장과 밤의 고독을 모두 겪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지금 내가 풀을 뽑고, PX에서 라면을 먹으며 느끼는 이 사소한 결핍과 불안들이 훗날 내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서사가 되기를 바란다.
전역하면 가장 먼저 친구들과 교촌치킨을 먹으러 가겠다고 다짐한다. 그 소박한 꿈이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나는 매일 밤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이곳에서의 기억도 언젠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반짝일 날이 오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조용히 이어폰을 꽂는다. 이 밤의 사색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