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미등의 바다에서 털어놓는 혼잣말
놓쳐버린 불꽃놀이와 꽉 막힌 차 안에서 마주한 서른 후반의 외로움에 관하여
사실은, 불꽃을 보러 가겠다는 마음 자체가 오랜만에 부려본 작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주말 밤하늘을 수놓을 거라던 축제 소식을 흘려들으며, 이번에는 방구석을 벗어나 그 찬란한 빛의 조각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닿은 곳은 밤하늘이 아니라, 앞차의 시뻘건 브레이크등이 끝도 없이 늘어선 아스팔트 도로 한복판이었다. 계기판의 시계는 이미 약속된 축제의 시작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던 차들은 마침내 엔진의 미세한 떨림만을 남긴 채 완전히 멈춰 섰다. 멍하니 내비게이션의 붉은 정체 구간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망했어, 차가 너무 막혀서… 시간 끝난 듯."
차창 밖으로는 거짓말처럼 거대한 인파가 물결치고 있었다. 선선한 가을밤 공기를 들이마시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어깨를 맞댄 연인들,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발걸음을 맞추는 청춘들, 저마다의 이유로 한껏 치장하고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웃고 떠드는 이들이 끝없이 지나갔다. 밀폐된 차 안에서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도 모르게 첫마디를 뱉었다. "사람이 참 많네. 이쁜 사람들도 많고." 그 말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그 무리 속에 섞여 들지 못한 채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립되어 있는 내 처지에 대한 서글픈 자각이었다.
차 안의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 유튜브 뮤직을 켰다. 일부러 평소에 듣지도 않던 가볍고 발랄한 음악들을 골라 랜덤으로 재생시켰다. 쨍하고 경쾌한 비트가 좁은 차량 내부를 가득 채웠지만, 묘하게도 음악이 밝아질수록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차라리 슬픈 발라드를 틀었다면 센티멘털한 감상에라도 젖었을 텐데, 억지로 띄워놓은 경쾌한 멜로디는 오히려 내 처량한 고립감을 더욱 도드라지게 조명할 뿐이었다. 신나는 리듬에 맞춰 손가락으로 핸들을 툭툭 건드리면서도, 내 시선은 자꾸만 창밖의 수많은 타인들에게 가 닿았다.
서른을 훌쩍 넘기고, 어느덧 삼십 대 중후반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면서 나는 혼자 있는 법에 꽤 익숙해졌다고 믿었다. 개발자로 매일 모니터 앞에 앉아 묵묵히 코드를 치고, 혼자 밥을 먹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거나 혼자만의 루틴을 소화하는 일상에 제법 단단한 굳은살이 배겼다고 여겼다. 남들에게는 굳이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혼자서 충분히 자유롭고 평온하다고, 혼자 사는 삶도 나름의 질서와 안온함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거절당하기 싫고, 상처받기 두려워 스스로 둘러친 방어막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불꽃놀이를 보러 가려던 계획이 어그러지고, 화려한 축제의 소음에서 철저히 차단된 채 차 안에 갇혀버리자 오랜 시간 덮어두었던 내밀한 결핍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스스로에게조차 인정하기 부끄러웠던 그 문장이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저 많은 사람 중에 내 짝이 있을까. 외롭다."
입술 밖으로 내뱉어진 단어는 차 안의 공기 중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외롭다는 말을 소리 내어 해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이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외롭다'는 고백은 마치 삶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의 나약한 투정처럼 느껴져서,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도 삼키고 또 삼키곤 했다. 하지만 밖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의 틈바구니를 보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혼자였는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냥,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주말 밤에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대단한 조건이나 거창한 로맨스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의 끝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람 하나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대화 상대가 내게 '어떤 순간에 마음이 잘 맞는다고 느끼냐'고 물었을 때, 나는 헛웃음 섞인 씁쓸한 자조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없는데 마음이 맞는 포인트가 없지." 맞다. 내 앞에는 나와 눈을 마주칠 사람조차 없는데,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어떤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인연을 맺는 일조차 아득히 멀어진 삶 속에서 나는 취향과 이상형이라는 껍데기 뒤로 숨어버렸던 것이다. 시작조차 하지 못하면서 조건만 따지는 비겁함, 사람을 만나는 데 따르는 수고와 불안을 감당하기 싫어 체념을 합리화하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초라하고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로 뱉어내고 나니 꽉 막혀 있던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헐거워졌다. "맞아. 얘기라도 하면 좀 나아지더라고." 잘 포장된 어른의 언어가 아니라, 볼품없는 결핍과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소리 내어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위안이 찾아왔다. 우리는 늘 남들에게 괜찮은 척, 의연한 척, 완벽하게 통제된 삶을 사는 척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 하지만 차 안에 갇혀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바닥에 내던져진 솔직한 고백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옥죄고 있던 긴장을 스르르 풀어주었다.
오늘 하루는 계획대로 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불꽃놀이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려던 계획은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보기 좋게 무너졌고, 차를 돌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 하지만 지나간 오늘을 곰곰이 되짚어보다가 문득 낮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점심 무렵, 집 근처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아주 오래된 식당이었다. 늘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허름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먹은 냉면 한 그릇이 뜻밖에도 기가 막히게 괜찮았다. 투박한 메밀면에 맑고 차가운 육수 한 모금을 들이켰을 때 느꼈던 그 선명한 만족감.
오랫동안 내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작은 식당처럼, 어쩌면 우리가 찾는 행복이라는 것도 저 멀리 밤하늘을 화려하게 쪼개며 사라지는 불꽃놀이에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행복은 사소한 곳에 있는 거 아닐까 싶네." 하늘 높이 쏘아 올려져 수천 명의 탄성을 자아내고 찰나에 재가 되어버리는 거대한 축제보다, 무심코 들어간 골목 식당에서 건져 올린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나, 실패한 드라이브 끝에 편의점에 들러 사 마시는 따뜻한 캔커피 한 잔의 온기 속에 진짜 삶의 숨구멍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불꽃은 보지 못했고, 돌아가는 길 여전히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제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조금 빼본다. 내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내일도 모레도 나는 익숙한 고독을 짊어진 채 컴퓨터 앞에 앉겠지만, 오늘 밤만큼은 내 안의 결핍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담담하게 인정하며, 길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집으로 향할 것이다. 오늘 밤 차 안에서 길어 올린 이 서툴고 솔직한 혼잣말들이, 언젠가 불쑥 찾아올 나의 다정한 짝에게 닿기 전까지 나 자신을 다독여주는 작은 불꽃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