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의 우주를 돌보는 사람, 당신의 정원에도 물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때로는 나를 갉아먹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인터뷰어로서 사람을 만날 때, 나는 늘 그 사람의 '언어'를 관찰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가 어디에 찍히는지, 어떤 단어에서 목소리의 높낮이가 미세하게 떨리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오늘 만난 ** 씨는 교사였다. 30명이라는, 어쩌면 한 사람의 어깨에 얹기엔 벅찬 30개의 우주를 매일같이 감당하고 있는 35세의 교사.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 씨는 꽤 긴장한 모습이었다. 학교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하루 종일 견디고 온 사람에게, 무언가를 다시 '말하는' 과정은 아마도 또 다른 에너지를 요하는 노동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러 주제를 놓고 고민했다. 그중 ** 씨가 선택한 것은 단연 '교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보람과 고민'이었다. 그녀는 최근 마음을 쏟고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밝던 아이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학교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막막함. 선생님으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면 그녀는 밤잠을 설치고는 한다고 했다.
그 아이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잘 안 와요.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내가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자꾸 의심이 들어요.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생각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 건강한 불안함이야말로, 우리가 ** 씨 같은 사람을 '좋은 교사'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웠다. 타인을 향한 책임감의 무게가 본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씨는 쉬는 시간마다 아이 곁을 지키고, 몰래 과자를 건네며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규 교육과정에는 없는,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정함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 검열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 씨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꽤 깊어 보였다.
대화가 깊어지자 ** 씨의 일상이 조금씩 드러났다. 퇴근 후에는 소파에 박제된 듯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는 고백, 베이킹과 독서라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는 체념, 그리고 돌보지 못해 말라 죽어버린 식물을 보며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 몬스테라가 죽은 것은 ** 씨의 잘못이 아니라, ** 씨가 너무나 지쳐 있다는 신호라고.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눈물은 식물을 향한 미안함이 아니라, 묵묵히 버텨온 자신을 향한 뒤늦은 위로였을 것이다.
저도 어릴 때 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았거든요. 저도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제 그릇이 생각보다 작은 것 같아서 좀 부끄러워요.
'그릇이 작다'는 그녀의 표현은 사실 아주 겸손한 오해다. 30명의 아이를 품으려는 마음의 크기가 이미 보통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그녀만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그릇이 작아서가 아니라, 그릇에 담긴 사랑이 너무 뜨거워 스스로가 데이고 있는 중인 것을. 인터뷰 중 가장 따뜻했던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콘' 이야기였다. 주말에 오랜만에 구워본 스콘, 반죽을 치대며 느꼈던 생경한 감각들. 그녀는 슬픔이 아닌, '살아있는 나'를 재확인하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것은 타인을 돌보는 '교사'의 옷을 벗고, 잠시나마 오롯이 '나'로 돌아가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오븐에서 빵 냄새가 나는데 그게 되게 위로가 됐어요. 근데 그러다 또 월요일에 학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무거워지더라고요.
월요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것은 그녀가 나약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처음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서 다치고 있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그녀는 이제 교실 밖의 정원에도 물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이 곧 아이들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30개의 우주를 지켜낸 ** 씨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애썼고, 당신의 정원에도 꽃을 피울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