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김기 앞의 아나운서, 5년의 기름 냄새를 기록하다
치킨집 사장 ** 씨가 굽는 것은 닭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이름의 문장들이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내가 선택한 문장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뱉어내야 했던 고백들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손에는 마이크 대신 집게가 들려 있고, 내 앞에는 화려한 조명 대신 뜨거운 기름이 끓는 튀김기가 놓여 있다. 5년. 치킨집 사장으로 살아온 이 시간은 단순히 닭을 튀겨낸 세월이 아니라, 마이크를 잡고 싶어 했던 스물몇 살의 청년이 40대의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낸 기록이다.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원래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40이라는 숫자가 몸에 새겨지고 나니, 자연스레 세상이 가장 고요한 시간에 깨어나게 되더라. 그때 한강 공원을 걷다 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아주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어제 뉴스에서 들었던 미국 금리 인상 소식이나, 끝도 없이 오르는 기름값 걱정,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가는 둘째의 학원비 같은 현실적인 무게들이 새벽 공기에 섞여 흩어진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그 시간은 내가 하루를 버텨낼 힘을 충전하는 나만의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치열함 속에서도 일상은 의외의 순간들에 균열을 낸다. 아내가 갑자기 비건을 선언했을 때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남편과 비건이 되겠다는 아내라니. 세상이 이토록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여전히 뜨거운 기름 앞에서 눅눅한 배달 리뷰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사장님, 치킨이 눅눅해요.” 이 짧은 댓글 하나에 하루가 무너지는 건, 그만큼 내가 이 일에 진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나운서를 꿈꾸며 마이크 앞에 서고 싶었던 그 열정이, 지금은 ‘맛있다’는 손님 한 마디에 담긴 보람으로 형태만 바뀐 채 여전히 내 안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은 온통 불공평해 보인다. 코인으로 단번에 큰돈을 벌었다는 옆집 사람, 줄을 서서 먹는 옆 동네 곱창집, 그리고 퇴근하면 모든 업무가 끝나는 공무원 친구까지. 나만 멈춰 서서 기름 냄새를 풍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수시로 밀려든다. 테슬라 주식을 조금 사보고, 유튜브 브이로그를 기획하며 어떻게든 이 현실의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 것도 다 그런 마음에서다. 10년 만에 다시 교회 문을 두드린 것도 마찬가지다. 치킨 기름 냄새와 숫자들로 점철된 세상에서, 잠시나마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필요했으니까.
가장 마음이 흔들릴 때는 아버지가 생각날 때다. 건어물 가게를 30년 하시다 문을 닫던 날, 아버지가 흘리던 눈물을 나는 기억한다.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다. 그저 힘든 장사를 끝내는 안도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치킨집을 접을까 고민하는 지금, 그 눈물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당신의 청춘을 통째로 떠나보내는 ‘졸업식’ 같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5년의 기록을,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질 치열했던 시간을 그렇게 눈물로 졸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40대는 너무 늦은 것도, 그렇다고 아주 이른 것도 아닌 애매한 나이다. 배달 기사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때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꿈꾼다. 초등학생 막내와 함께 유튜브를 고민하고, 요리사에서 골프 프로로 전직했다는 레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의 의외성에 감탄한다. 나는 지금 치킨을 튀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위한 문장들을 한 줄씩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내 가족이 있고, 내 몫의 땀방울이 머무는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 밤에도 배달 주문 알림은 11시가 넘어서야 멈추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새벽 산책길에 마주할 차가운 공기와,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먹을 밥 한 끼를 생각하면 다시 집게를 잡을 힘이 생긴다.
돌이켜보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온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눅눅한 치킨 리뷰에 속상해하면서도, 다시 맛있는 치킨을 튀기기 위해 연구하는 사장님이자, 아나운서의 꿈을 간직한 채 오늘도 가게 문을 여는 한 사람. 그렇게 나는 나만의 속도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바삭한 하루가 되기를, 아니, 적어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오늘도 기름 냄새 가득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