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밖의 이방인, 혹은 관계를 분석하는 변호사의 고백
타인의 이별을 상담하는 전문가는 왜 정작 자신의 감정 앞에서는 거리를 두게 되었을까
의뢰인의 울음소리가 법정의 공기를 메운다. 변호사 **는 무심한 표정으로 펜을 쥔다.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한 계산기로 변모한다. '재산분할은 이 비율로, 양육권의 쟁점은 이 지점으로.' 그녀의 손끝에서 타인의 인생은 법적인 용어와 논리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공감해야 할 자리에서 그녀는 분석을 택한다. 그것은 지난 2년의 시간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두꺼운 갑옷이다.
“처음에는 의뢰인분이 울면 저도 같이 울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다음 변론 전략을 짜고 있더라고요. 전문가로서는 완벽한 태도겠지만, 때때로 이게 진짜 내 모습인가 싶어 소름이 돋곤 해요.”
그녀는 자신이 쌓아 올린 이 ‘거리두기’가 본능적인 방어 기제임을 인정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타인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기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도 연약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균열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것이 직업인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치였다. 27살,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를 때마다 그녀는 남들보다 더 깊은 심연을 마주한다. 남들이 '환상'이라 부르는 결혼의 이면에서, 그녀는 매일 '파국'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으니까.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녀의 본능은 변호사라는 직업의 궤적을 따라간다. 상대가 불안해하며 다가올 때, 그녀는 다독이는 대신 '진단'을 내린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이런 불안 때문이야.” 그것은 이해하려는 최선의 노력이었지만, 상대에게는 차가운 칼날로 박혔다. 사랑을 나누어야 할 자리에서 그녀는 왜 자꾸만 법정을 세우는 걸까.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은 사실,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도박에 스스로를 던지는 것이 두려운 그녀의 비겁한 도피처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현재의 인터뷰 자리. **는 자신의 '분석 모드'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는다. 상대가 진단받는 것 같다고 호소했을 때 느꼈던 억울함과 쓸쓸함. 그것은 자신의 진심을 오해받았다는 상처이자, 스스로도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는 자각에서 오는 통증이다.
“의뢰인들한테는 말하잖아요. 이별은 실패가 아니라, 서로에게 정직했던 시간의 마무리라고. 그런데 정작 제 인생에는 그 말을 단 한 번도 적용해본 적이 없었어요.”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녀의 목소리에 배어 있던 서늘한 분석의 기운이 옅어진다. 그녀는 깨닫는다. 타인을 향해 뻗었던 따뜻한 위로가 사실은 자신을 향해 있었어야 할 구명조끼였다는 사실을. 관계의 끝을 '실패'라는 형벌로 규정했던 것은 상대가 아니라, 완벽을 강요하던 자기 자신이었다.
두 개의 시간대가 겹친다. 법정의 차가운 서류 더미 속에서 냉철하게 사건을 쟁점화하던 변호사 **와, 관계의 영원함보다는 그 정직함을 믿어보고 싶어진 인간 **가 마주한다. 그녀는 이제 안다. 분석을 멈추고 잠시 소용돌이 속에 머물러 주는 것. 그것이 전문가로서의 유능함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사랑의 본질임을.
이제 그녀는 타인의 이별을 상담하는 법정 밖으로 나와, 자신의 사랑을 향한 첫 번째 변론을 준비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고, 영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서툰 고백을. 그녀의 마음속에 그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아주 조금, 조심스럽게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