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뒤의 고요, 향기로 맺은 다정한 안부
약사 **이 세상의 소음을 끄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들에 대하여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료, 혹은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어야 하는 삶. ** 씨가 매일 아침 가운을 입고 약국 문을 열 때, 그녀는 자연스럽게 '약사 **'이라는 이름표를 단다. 그곳에서 그녀는 하루 종일 타인의 아픔을 경청하고, 친절한 어조로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며, 무너진 이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하지만 정작 그 기둥인 그녀 자신은 누구에게 기대고 있는가. 나는 **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를 치유하는 사람이 가장 치열하게 자신의 안온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가 퇴근길에 향하는 곳은 화려한 번화가가 아닌, 숨을 죽인 채 고요히 흐르는 카페의 구석자리다. “약국에 있으면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잖아요. 퇴근하고 나서 조용한 카페에 가서 앉아 있으면 좀 숨을 쉴 수 있는 느낌이에요.” 그녀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요구와 감정의 파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자 은신처다.
나는 그녀의 이 고백에서 현대인의 서글프지만 고귀한 생존 방식을 보았다. 에너지를 소진하고 돌아온 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곳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지탱하게 하는 유일한 엔진이기 때문이다. 카페라는 공간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허락’을 주는 특별한 허가 구역인 셈이다.
** 씨는 그 고요 속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그녀가 피사체로 삼는 것은 사람이 아닌 빈 의자, 혹은 잔 위로 피어오르는 온기 어린 김이다. “사람을 찍는 건 좀 부담스러워서... 렌즈 뒤에 숨어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 문장에 머물렀다. 렌즈는 세상을 보는 창이기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안전한 거리이기도 하다. 그녀가 찍는 사진에는 항상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 사진 속 빈 의자에는 오히려 사람의 흔적이 짙게 묻어 있다. 비어 있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깊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풍경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비로소 ‘약사 **’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다. 렌즈 뒤에 서 있는 순간, 그녀는 누군가의 건강을 돌보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세상을 응시하는 한 사람의 관찰자가 된다. “약국에서는 늘 약사 **이잖아요. 근데 가끔 저도 누군가한테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거든요. 렌즈 뒤에서 세상을 보고 있으면 아무 역할도 안 하는 그냥 저 자신인 것 같아서 편해요.” 이 말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그 가면이 단단할수록 퇴근 후의 우리는 더 깊은 허기를 느낀다. ** 씨는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가리고, 그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만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으면, 그녀는 다시 향기를 처방한다. 라벤더나 베르가못 같은 아로마 오일이 디퓨저를 통해 공기 중에 흩어질 때, 하루 종일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의 근육들도 서서히 이완된다. 약사라는 직업적 지식으로 성분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향이 주는 위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과정을 닮았다.
“오늘도 수고했다, 그런 말인 것 같아요. 약국에서는 제가 그 말을 환자분들한테 해드리잖아요. 근데 정작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혼자 사는 공간, 누구의 간섭도 없는 방 안에서 향기는 그녀를 안아주는 유일한 타인이 된다. 누군가는 이를 외로움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 씨는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는다. 그녀는 향기라는 섬세한 언어를 통해, 밖에서 빌려온 에너지가 다 소진된 자리에 자기 자신을 향한 다정한 위로를 직접 채워 넣고 있다.
나는 ** 씨와의 대화를 통해, 타인을 돌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지 그 숭고한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렌즈 뒤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어 안전함을 찾고, 향기를 통해 고립이 아닌 안식을 선택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늘 타인의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업을 가진 사람이, 매일 저녁 자기 자신을 회복시켜 다시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는 일.
오늘 밤, 누군가는 약국에서 ** 씨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위안을 얻고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자신에게만큼은 가장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오늘도 카페에 앉아 빈 의자를 찍고, 집으로 돌아와 라벤더 향을 피우는 한 인간 **을 기억하고 싶다. 그녀의 삶은 조용하지만 매우 단단하다.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진정한 빛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자신의 일상으로 증명하고 있다. 밤이 깊어간다. 그 고요한 방 안에서 흐르는 향기처럼, 그녀의 평온한 밤이 내일의 또 다른 다정한 아침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