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생각의 고리 속에서, 비로소 ‘나’를 발견하다
마흔의 문턱, 기계처럼 달리기만 했던 연구원이 마주한 ‘살아있음’의 감각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모습을 볼 때면, 저게 바로 살아있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제 인생은 너무 죽어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일하는 기계처럼요.”
40이라는 숫자를 마주한 ** 씨가 조심스럽게 꺼낸 첫마디는 서늘했다. 그것은 단순히 노화에 대한 회한이 아니었다. 지난 세월, 그는 오직 ‘연구원’이라는 타이틀과 ‘목표 달성’이라는 효율성만을 삶의 척도로 삼았다. 시스템의 부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업무 환경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에게 인생이란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부속품을 조립하고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문턱 앞에 선 지금, 그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텅 빈 가슴을 마주하고 있다. 공부하느라, 혹은 당장의 성취를 위해 정작 ‘나’라는 사람은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그 시절에 대한 뒤늦은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는 고백한다. “뭘 잘 모르고 그저 목적만 위해서 달려온 것 같아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 씨가 무대 위 배우들에게서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살아있음’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본능, 즉 사냥과 같은 생존의 위협이나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갈림길에서의 전율을 갈망한다.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 속 데이터를 응시하고, 동료들과의 대화마저 생략한 채 부품처럼 일하는 그의 정적인 일상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이 서서히 휘발되고 있다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그가 택한 출구는 역설적이게도 ‘고통’이었다. 등산화가 거친 바위에 닿으며 내는 마찰음, 배드민턴 셔틀콕을 쫓아 터질 듯 고동치는 심장 소리. 그는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고통의 순간에, 비로소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운동을 통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잠시나마 소거한다. 하지만 그에게 운동은 휴식이 아니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는 고통을 자처함으로써, 멈추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강제로 끊어내려는 생존 투쟁에 가깝다.
“현실의 고뇌를 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 같아요. 업무든, 게임이든, 운동이든요.” 그는 자신의 삶이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끝없는 도피와 몰두의 연속임을 인정했다. 고요한 시간은 그에게 회복의 기회가 아니라, 마주하기 힘든 내면의 소음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공포의 시간이다. 그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각의 꼬리들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겨우 평온에 이를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성장’이나 ‘진정성’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삶을 포장하려 한다. 하지만 ** 씨의 고백은 그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아프다. 그는 거창한 철학을 말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낯선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금 심장의 뜨거운 박동을 느끼고 싶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고독을 말할 뿐이다. 그에게 있어 삶의 목표란 이제 거대한 프로젝트의 완수가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톱니바퀴를 잠시 멈추고, 온전히 자신의 감각을 느끼는 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남긴 “좀 길긴 했는데 흥미로웠어”라는 짧은 감상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이라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안다. 멈추지 않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던 그 모든 시간조차, 사실은 그가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고 싶어 했던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모두 규격화된 사회 속에서 기계처럼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만의 박동을 찾으려 애쓰는 존재들이다. ** 씨의 고민은 곧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생각의 고리 속에서, 우리는 언제쯤 비로소 고통 없이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될까?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긴 여정은, 지금처럼 스스로를 조금씩 내려놓고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 씨가 털어놓은 것은 고백이 아니라, 닫혀 있던 자신의 세계로 향하는 작은 문을 조금 열어젖힌 행위였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가동’하는 것을 넘어, 비로소 ‘살아내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