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맨날 안 옴: 가장이라는 이름의 샌드위치
가면 뒤에 숨겨진 가장의 고독, 우리는 그토록 단단해지려 애썼다
밤 열두 시, 주차장의 낮은 조명 아래 시동을 끄고 잠시 멈춰 섰습니다. 엔진의 떨림이 잦아들고,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그 좁은 공간. 팀장 ** 씨에게 하루 중 유일하게 ‘팀장’도 ‘가장’도 아닌,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바로 이 짧은 10분입니다. 그는 그 10분 동안 핸들을 잡은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마주해야 할 일상, 그 무거운 짐들을 잠시 문밖으로 밀어내고서야 비로소 숨을 쉽니다.
“밑에서 치이고 위에서 눌리고.”
그는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요약했습니다. 팀장이 되면 모든 게 명확해질 줄 알았습니다. 성과라는 지표는 차갑고 냉정하며, 위에서는 숫자를 닦달하고, 아래에서는 무언의 기대를 보냅니다. 그 사이에서 그는 완충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든든한 방패로, 때로는 흔들림 없는 중심추로. 하지만 그 단단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어쩌면 아버지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남자는 약한 소리를 내선 안 된다’는 오래된 주문인지도 모릅니다.
가장 아픈 순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키우던 후배가 퇴사를 통보하던 날, 그는 “고생했다”는 말밖엔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더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끝내 목구멍 뒤로 삼켰습니다. 팀장이라는 ‘체면’이라는 이름의 가면이, 그의 진심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영업 현장에서 고객에게는 그토록 유연하게 진심을 전하던 그가, 정작 내 사람에게는 입을 닫는 아이러니. 그것은 그가 스스로에게 건 차가운 최면이자, 스스로를 옥죄는 벽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도 그 벽은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아내에게조차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합니다. 행여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혹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을까 봐. 대신 그 빈자리는 아이의 일기장이 채웁니다. “우리 아빠 직업은 회사원. 맨날 안 옴.” 아이가 무심코 적어 내린 그 짧은 문장이, 사실은 그의 가슴을 가장 날카롭게 베어냈습니다. 그는 웃으며 그 글을 보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서글픔이 깊게 고였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다짐으로 달렸건만, 정작 가족에게는 ‘자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현실.
그는 가끔 상상합니다. 접대와 야근이 없는 저녁, 아이의 숙제를 옆에서 봐주고 잠든 아이의 이불 끝을 여며주는 평범한 장면을요. 그 평범함이야말로 그가 일생을 걸고 지키려 했던 가치였음을, 그는 이제야 고백합니다. “나 요즘 좀 힘들어, 좀 안아줘.” 그 한마디면 충분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협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 씨가 차 안에서 보내는 그 10분은, 어쩌면 무너져가는 자신을 다시 붙잡기 위한 처절한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단단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온전한 ‘나’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넥타이를 조여 매고 팀장이라는, 가장이라는 가면을 써야 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는지 확인했습니다.
차 시동을 다시 겁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음악 소리가 고요를 깹니다. 그는 이제 집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밤, 그는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며 마음속으로만 수백 번 건넸던 그 한마디를 나지막이 되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참 애썼다.’
그의 뒷모습이 밤공기 속으로 흩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 씨들에게, 당신은 이미 충분히 든든한 기둥이라고, 때로는 조금 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