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벽 너머로 띄우는 노래, '듣고 있어요'
아빠가 외면한 무대 위에서 내가 발견한 진짜 내 모습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가끔은 무대가 두려울 때가 있어요. 조명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숨을 죽이는 그 짧은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쉽니다. 그때만큼은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거든요. 연습실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혼자 흥얼거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 짜릿한 에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그 시간은 내게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엉망진창인 현실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방패입니다.
하지만 무대를 내려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 방패는 맥없이 부서지곤 하죠. 어김없이 들려오는 질문. "그래서 대학은 어디 갈 거냐?" 그 한마디가 공중에 흩어져 있던 무대 위의 환희를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아빠에게 음악은 언제나 '현실성 없는 꿈'일 뿐이니까요.
얼마 전이었어요. 아빠가 실용음악과 원서를 쓰지 말고 경영학과에 가라고 하셨을 때, 나는 난생처음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그건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였어요.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낸, 세상에서 가장 서툴고도 솔직한 첫 번째 목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 소란을 피운 뒤 방에 틀어박혀 엄청나게 후회했어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하는 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빠가 내 마음을 영영 알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 때문이었죠.
유일한 안식처는 음악 선생님의 한마디예요. “**아, 너 재능 있다.” 차가운 성적표와 입시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선생님의 그 말은 썩은 동아줄 같으면서도,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빛입니다. 학교 축제 무대에서 처음 솔로로 노래했을 때, 유튜브 댓글창에 남겨진 “목소리 좋다”는 짧은 문장들은 밤을 새워 연습해도 피곤하지 않게 만드는 마법 같은 연료가 되었죠.
한 번은 아빠가 축제에 몰래 다녀가셨다는 걸 엄마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셨다는 말에, 나는 방에 홀로 앉아 펑펑 울었어요. ‘아빠도 내 노래를 들었구나. 그럼 마음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공부 이야기를 꺼내셨죠. 그 침묵은 내게 미움보다 더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빠도 그날 무대 위의 나를 보며, 자신이 정해둔 현실이라는 틀이 흔들리는 걸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 흔들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서툴게 벽을 쌓아 올린 것일지도 모르죠.
사람들은 흔히 나를 '노래밖에 모르는 애'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나는 노래만 하는 게 아니에요. 사실 작곡도 조금씩 배우고 있죠. 요즘 내가 쓰고 있는 노래 제목은 <듣고 있어요>입니다. 말은 안 해도, 내 노래가 아빠의 귀와 마음 어딘가에 가 닿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어요. 멜로디를 짜고 가사를 다듬는 그 정성 어린 시간 동안만큼은,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내가 만든 곡으로 무대에 서서, 그 노래를 아빠에게 들려주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때 아빠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뭉클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요. 어쩌면 그날 아빠는 처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대신,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시지 않을까요. 나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이어폰을 꽂습니다. 세상의 모든 좁은 시선들을 뒤로하고, 오직 나만의 언어로 나를 증명해 나가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보렵니다. 비록 지금은 외로운 싸움 같아도, 내 안에는 아직 들려주지 못한 수많은 멜로디가 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