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에 새긴 30년, 콘크리트 위에 지어 올린 삶의 풍경
건설 현장 소장 김**이 말하는 버티는 힘과 그 이면의 다정함
서울의 어느 겨울,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박히던 30년 전의 강남. 스물한 살의 청년 김**은 거푸집이 무엇인지, 콘크리트 타설이 어떤 과정인지조차 모른 채 무작정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서툰 손길은 결국 거푸집을 뒤틀리게 했고, 선배의 호된 꾸지람은 혹독한 신고식이 되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선배가 건넨 소주 한 잔에는 핀잔보다 깊은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다음엔 이렇게 해라.” 그 짧은 조언이 한 청년을 30년 차 베테랑 소장으로 이끄는 첫 단추가 되었다.
지금의 김** 소장을 설명하는 단어는 ‘성실함’이나 ‘숙련도’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이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는 언제나 ‘안전’이었다. 기술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기에 앞서 그는 후배들에게 안전모의 턱끈을 다시 조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꼰대 같은 참견일지 모르나, 그 안에는 ‘다치면 끝이다’라는, 현장에서만 체득할 수 있는 서늘한 진리가 담겨 있다.
"나는 젊은 애들한테 기술보다 안전부터 가르쳐요. 한번 다치면 끝이거든. 근데 속으로는 걱정이 되지. 다치면 어쩌나 싶고. 그래서 좀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의 잔소리는 미움이 아닌 염려였다. 현장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퇴근하기를 바라는 아버지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30년 동안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콘크리트 바닥을 누벼온 그의 무릎은 이제 한계 신호를 보내고 있다. 병원에서는 당장 쉬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오늘도 현장으로 향한다. 건물이 조금씩 올라가고, 마침내 그 형태를 온전히 드러낼 때 느끼는 그 벅찬 성취감은 그에게 노동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허전해진다. 아내는 함께 산을 오르자며 낭만적인 제안을 건네지만, 무릎이 버텨줄지 걱정이 앞선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짓는 일’에 바친 그에게 이제 ‘멈추는 일’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다시 조율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건물이 완성될 때마다 느꼈던 희열은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는 조용히 답한다.
"현장이란 게 그래요. 매일 위험하고 힘든데, 그래도 뭔가 올라가는 거 보면 뿌듯하죠. 건물이 완성됐을 때 그 느낌은 뭐 말로 다 못해요. 그걸 못 보게 되면 좀 허전할 것 같긴 해요."
그는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다. 다만 당장 은퇴할 때가 오기 전까지, 오늘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는 것. 그것이 그가 평생 지켜온 삶의 태도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철근 사이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김** 소장. 그의 무릎에는 30년의 세월이 새겨져 있지만, 그가 지어 올린 것은 단순히 건물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보금자리와, 오늘을 버티게 하는 후배들의 안전한 내일까지 그는 함께 쌓아 올리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현장으로 향한다. 해가 지고 건물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시간, 그가 느끼는 안도감과 뿌듯함이야말로 30년 동안 그가 견뎌온 삶의 가장 정직한 결실일 것이다.